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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벡터로 만들면 "좀 더 인도식으로"가 계산이 된다

컴퓨터에게 식재료의 이름을 300차원 벡터 공간의 좌표로 바꾸어 준 뒤, “쌀 벡터를 남아시아 방향으로 30도 회전시켜 봐”라고 명령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놀랍게도 좌표 주변에서 카레잎, 마수르달, 우라드달, 호로파씨가 튀어나온다. 옥수수 벡터를 중남미 방향으로 30도 돌리면 살사베르데, 토마티요, 케소프레스코가 튀어나온다.

푸드테크 기업 KAIKAKU.AI의 Jakub Radzikowski와 Josef Chen이 발표한 논문 《Epicure: Navigating the Emergent Geometry of Food Ingredient Embeddings》 [1]은 인간의 가장 주관적인 감각인 맛과 향, 그리고 요리 스타일을 기하학적 벡터 공간으로 시각화하고 수학적으로 연산하는 놀라운 실험을 선보였다.

어떻게 식재료 사이의 복잡한 궁합을 벡터 연산으로 계산해 내는지, 그 흥미진진한 원리와 엔지니어링 인사이트를 정리했다.


1. 닭고기와 어울리는 재료는 왜 두 가지일까? (레시피 vs 분자 구조)

이 연구의 출발점은 요리사들의 아주 단순한 직관에서 시작된다. “닭고기와 어울리는 재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이웃 관계 유형 성격 및 정의 닭고기(Chicken) 기준 짝꿍/대체재
레시피 공동 등장 (Cooc) 같은 냄비에 함께 조리되는 궁합 재료 마늘, 양파, 후추, 칠면조, 당근
향미 화합물 유사성 (Chem) 분자 수준에서 맛과 향 성분이 닮은 대체재 소고기, 돼지고기, 치킨수프, 버팔로윙소스, 땅콩

기존의 단순 임베딩 모델들은 이 두 가지 성격을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로 뭉뚱그려 학습했다.

Epicure는 이 두 관계를 레시피 그래프(20만 개 연결)와 FlavorDB 화학 향미 화합물 그래프(8만 개 연결)라는 2차원 공간 축으로 깔끔하게 분리하여 모델을 설계했다.

[개념 짚고 가기: 재료를 임베딩(Vector)으로 만든다는 게 무슨 뜻일까?]
사과, 소고기, 바질 같은 재료 이름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300개의 숫자 좌표(벡터)로 변환하는 기술입니다.
공간에서 두 점의 거리가 가까우면 ’서로 어울리거나 비슷한 재료’라는 뜻이 되며, “닭고기 벡터 + 멕시코 방향 벡터 = 살사베르데”처럼 식재료와 요리 스타일로 덧셈·뺄셈·회전 연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2. 세 형제 모델: Cooc, Chem, 그리고 Core

연구진은 동일한 뼈대 위에서 그래프를 탐색하는 방식만 바꾼 3가지 모델을 만들어 비교했다.

모델명 학습 데이터 소스 답하는 핵심 질문 실제 닭고기(Chicken)의 최근접 이웃 TOP 5
Cooc 414만 개 레시피 공동 등장 “이거랑 냄비에 뭘 같이 넣지? 마늘, 양파, 후추, 칠면조, 당근
Core 레시피와 화학 정보를 반반 혼합 “맛도 어울리고 대체도 되는 것은?” 돼지고기, 소고기, 치킨스톡, 땅콩, 치킨수프
Chem 향미 화합물(FlavorDB) 연결만 “이거랑 맛 분자가 비슷한 것은? 소고기, 돼지고기, 치킨수프, 버팔로윙소스, 땅콩

바질(Basil)을 넣었을 때의 차이도 매우 흥미롭다:

  • Cooc 모델: 파슬리, 올리브유, 파르메산 치즈, 후추, 화이트와인 (파스타 만들 때 옆에 놓인 재료들)
  • Chem 모델: 타라곤, 오레가노, 로즈마리, 펜넬 (방향족 분자 구조가 닮은 이탈리안 허브 무리)

3. 벡터를 각도만큼 회전시키면: “좀 더 인도식으로, 좀 더 멕시코식으로”

Epicure의 백미는 재료 벡터를 특정 문화권이나 스타일 방향으로 연속적인 각도(다이얼 θ)를 돌려가며 회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회전 각도 요리 스타일 단계 닭고기(Chicken) 벡터 주변 추천 재료
0도 원본 일상 요리 마늘, 양파, 대파, 후추
30도 살짝 가미된 퓨전 요리 (+ 멕시코 방향) 또띠아, 살사, 몬터레이잭 치즈
60도 완벽한 현지 정통 요리 (+ 멕시코 방향) 코티하 치즈, 안초 칠리, 포블라노 고추

0도에서는 평범한 일상 재료가 나오지만, 다이얼을 30도 ➔ 60도로 돌릴수록 원본 재료의 굴레를 벗어나 그 지역의 깊은 정통 식재료로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옥수수(Corn)를 중남미 방향으로 회전한 결과

회전 각도 요리 스타일 옥수수(Corn) 벡터 주변 추천 재료
30도 중남미 요리 방향 살사베르데, 토마티요, 케소프레스코, 파히타 시즈닝, 옥수수 또띠아

4. 414만 개 레시피를 정제한 비결: 엉망진창 재료명의 정규화

실무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데이터 전처리(Data Cleansing) 작업이었다.

원시 웹 레시피 데이터의 재료 이름은 엉망진창이다. sourdough roll, kraft shredded triple cheddar cheese with a touch of philadelphia처럼 특정 제조사 브랜드명이나 조리법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그대로 학습시키면 임베딩 공간이 심각하게 오염된다.

Epicure 연구팀은 LLM을 파이프라인 전면에 배치하여 414만 개 레시피에 등장하는 수만 개의 지저분한 재료명을 1,790개의 깨끗한 표준 어휘로 정규화(Normalization)했다. 이 전처리 덕분에 300차원이라는 작은 벡터 공간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정밀한 기하학적 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다.


5. 기존 룰베이스 추천 vs Epicure 벡터 항해(Navigation) 비교

비교 항목 기존 요리 추천 시스템 (Rule/CF) Epicure 기하학적 임베딩 (Navigation)
추천 메커니즘 단순 과거 사용자 평점 기반 추천 300차원 벡터 공간의 기하학적 거리 및 회전 연산
맛과 궁합의 분리 불가능 (단일 점수로 환산) Cooc(궁합) vs Chem(맛 유사도) 선택 가능
스타일 변환 제어 불연속 필터링 (한식/양식 체크박스) 연속적인 각도 다이얼(0°~90°)로 미세 조절 가능
추론 비용 복잡한 딥러닝 랭킹 모델 호출 초고속 코사인 유사도 내적 연산 (O(1))

6. 엔지니어링 시사점: ’단순 추천’을 넘어 ’사용자가 조종하는 항해’로

연구진은 이 시스템의 철학을 “추천에서 항해로의 진화”(From Recommendation to Navigation)라고 표현했다.

AI가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오늘 저녁은 이 요리를 드세요”라고 정답 하나를 던져주는 수동적인 경험 대신, 사용자가 “지금 냉장고에 있는 닭고기를 가지고, 좀 더 지중해 느낌이 나게 40% 정도만 틀어줘”처럼 다이얼을 직접 돌리며 창의적인 탐색을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복잡한 블랙박스 모델 대신, 도메인의 특성을 반영한 아름다운 임베딩 공간 설계가 얼마나 직관적이고 강력한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연구다.


참고 문헌 및 원문

  • [1] Radzikowski J, Chen J. Epicure: Navigating the Emergent Geometry of Food Ingredient Embeddings. arXiv:2605.22391, 2026. (arXiv 원문)